국내 소모성자재 구매대행(MRO)기업들이 역차별 규제로 외국계 기업들에게 내수시장을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 현재 국내 MRO기업들은 지난 2011년 동반성장위원회가 'MRO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뒤부터 성장이 정체돼 있다. 일부 기업들의 경우 매출이 역신장하는 현상까지 발생했다. 여기에 아이마켓코리아, 서브원, 케이이피 등 주요 MRO기업들이 정부 규제로 인해 성장이 정체된 틈을 타 최근 외국계 MRO사의 공격이 거세지고 있다. 이들 외국계 기업의 국내법인은 직원수나 매출면에서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동반위의 MRO가이드라인 적용대상이 아니다.
2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최대 MRO기업인 그레인저의 일본법인 모노타로가 국내에 나비엠알로를 설립하고 내수시장을 본격 공략한데 이어 올들어 한국미스미, 한국화스너 등 외국계 기업들이 속속 국내에 진출, 토종 MRO기업들을 위협하고 있다.
특히 그레인저사는 매출 8조원에 달하는 글로벌 1위 기업으로, 지난 2000년 국내에 진출했다가 2011년 철수한 뒤 2년만에 일본법인을 앞세워 한국에 재진출했다. 그레인저는 2000년 당시 SK그룹과 50대 50 지분으로 MRO코리아를 설립하며 국내에 진출했으나 동반위의 가이드라인이 마련되자 규제를 피해 SK와 지분을 정리하고 국내 시장에 철수한 바 있다.
국내 MRO기업들은 이달말 만료되는 MRO가이드라인이 연장되거나 강화될 경우 외국계 MRO업체들의 시장잠식이 가속화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현재 동반위의 MRO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계열사 매출이 30% 이하인 경우에는 1500억원 이상, 계열사 매출이 30%를 초과하는 경우에는 3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는 기업에만 대기업계열 MRO업체들이 영업할 수 있다. 그러나 외국계 MRO기업들은 이런 가이드라인과 상관없이 매출액이 적은 기업들의 물량도 수주할 수 있다. 토종 MRO기업들에 대한 역차별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대목이다.
심지어 외국계 MRO기업들은 국내 중소기업을 인수해 사업범위를 확대하는 사례도 빈번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MRO기업 관계자는 "대기업의 사업영역을 제한해 중소 MRO기업을 성장시키겠다는 (가이드라인의) 당초 의도와 달리 외국계 MRO업체들이 중소 MRO업체들의 시장까지 잠식하고 있다는 게 문제"라며 "외국계 기업들은 규제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단기간에 국내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해 대기업들도 위기감을 느낄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중소기업 보호를 위해서도 외국계 MRO기업의 확장을 제재할 수 있는 근거 마련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한편 MRO기업들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타결 후폭풍도 우려했다. 이들은 전자상거래 업종이 FTA에 포함되면서 가격 경쟁력과 규모의 경제로 무장한 알라바바닷컴과 같은 중국 MRO기업들이 국내 시장에 진출할 경우 MRO 시장 자체를 외국계기업에 내줄 수 있다는 것이다.